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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질/박효신 (1999~2020)

2014.12.12~14. 박효신 "HAPPY TOGETHER" 콘서트로 돌아가기 까지

by LANA. 2014.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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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후기가 아닌 지극히 사적인 일기.

HAPPY TOGETHER

                            

2014 12 14. 서울 마지막 HAPPY TOGETHER Lana, 박가수 미안합네다..카메라를 들고갈 여력이 없어서 15주년 기념 콘서트에 무려 아이퐁으로 이따구 구린 화질을..ㅠㅠ지금 사진 배우는 중이니 내 20주년에는 대포로 꼭 불법 사진을 ㅎㅎ

 

2014 12 12, 13, 14. 대장나무 박효신 그의 15주년 서울 콘서트에 다녀왔다. 2년전 <War is Over> 전쟁콘 이후 2년만에 다시 콘서트에서 대장나무를 만나기까지. 2013, 2014년 많은 일들이 있었다. 

 

2013년 봄.

서른이 되어 있었다. 기타를 배웠다. 커리어는 불안했다. 백화점 콘서트 티켓을 사러 긴 줄을 선 날 직원인 학교 선배를 보고 숨었다. 처음으로 내 나이가 부끄러웠다. 이후 백화점 콘서트는 일과 현실적인 문제들로 패스 했다. 전국투어도 아닌 게스트 박효신씨를 보러 <김광석 다시부르기> 콘서트 겸 부산여행을 다녀왔다. 음악계를 포기하고 월급쟁이가 되기 위한, 멋있어 보이는 곳에 이직을 했다. 서른의 미생 시작 -

 

여름.

허울좋은 회사에서 낮밤과 위아래 없는 업무의 아비규환이었다. 시달리다 기대하며 찾아간 그의 뮤지컬 <엘리자벳> 에서는 쿄토드에 집중할 수 없을 만큼 힘든 마음에 당황했다. 연기에 몰입한 그를 구경하고 있는 구경꾼이 된 상태가 서운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호흡하지 못하는 구경꾼 밖에 되지 못하는 내가 아주 많이 슬펐다.

 

가을.

그렇게 조용한 월급쟁이가 되어 하루하루 월급통장의 숫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없어졌다. 엄마랑 태국여행을 다녀왔고, 엄마아빠께 용돈을 조금 더 두둑히 드릴 수 있는 게 좋았다. 주변 사람들을 조금 더 챙겼다. 격하게(..)라도 대화하기를 포기하며 입을 닫았고, 내가 좋아하던 것들, 음악이나 글이나 대장 소식에서 점점 멀어졌다. 아빠의 노후대비 사과 농사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겨울.

연말이 되고 삼삼한 생일파티도 과감하게 지각, 중간에 들어갈 만큼 나는 말라갔다. 그가 불러준 <좋은 사람>에 울컥할 뿐.. 회색이 된 마음이 전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앨범도 없었고 콘서트도 없었다. 으레 누려왔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큰 서운함으로 변했다. 할머니 댁에 자주 내려갔다.

 

2014년 봄.

종교처럼 사랑해 마지 않던 그에게서 조금 물러나 앞으로의 삼십대와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처음으로 진지한 고민이 들었고, 계속해서 교회에 나갔다. 정재일의 <상림의 노래>들로 마음속에 반짝 하는 것을 회복했다. 소치올림픽때의 과로로 넘어져 생애 첨으로 다리 깁스를 해봤고, 덕분에 하게 된 재택근무에서 조금씩 자아를 회복했다. <야생화>를 듣고 채무변제 소식을 전할 수 있음에 처음으로 일이 기뻤다. 그러다 세월호 및 일련의 일들로 일이 심각하게 괴로웠다.

 

여름

연기와 캐릭터를 즐기고 정말 그 인물이 되어가던 그에게 어떤 연민까지 느끼며 뮤지컬 <모차르트>를 네 번 정도 보았다. 의미 없는 인연들이 요란하게 지나갔다. 아꼈던 친구에게 큰 실망을 하고 헤어졌다. 나에게만 몰입할 것들이 필요했고 피부과에 다니고 교정을 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어떤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바쁜 여름이었다.

 

가을

담담하게 퇴사를 했고, 일하듯 빡빡한 스케줄을 짜서 대만 여행을 다녀왔다. 동호회에서 사진을 배웠다. 고생만 하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모의 연락을 받고 누워 계신 할머니를 뵈러갔다. 차마 말할 힘이 없는 할머니가 희미한 눈으로 내 손을 꽉 잡아주셨다. “또 놀러 올게요라는 바보 같은, 희망고문 같은 말을 남기고 할머니를 떠나오며 불안감에 많이 울었다. 서울로 돌아와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은지 일주일 후 <바리설화>를 노래하는 정재일의 페스티벌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예매한 GMF 새벽, 할머니가 바리처럼 다시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셨다. 처음으로 가족의 입관을 보았고 장례식장에서 이런저런 보이지 않는 폭력에 시달렸다. 충격으로 엄마가 심하게 아팠고, 놀랄 겨를 없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계속해서 다음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3일째를 못치르고 서둘러 서울로 올라왔다.

기도했고 기도했다. 새로운 인연들이 가만히 옆에 있어 주었다. 기도 속에서 마음을 비우고 기도하고 다시 비웠다. 텅 빈 채 친구들과 가족들과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고 운동을 하고 TV를 보고 쇼핑을 하고 잠을 많이 잤다. 중요하다고 느꼈던 모든 것들이 희미해지며 나도 함께 희미해졌다.

 

겨울

완생을 위해 (..ㅋ)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일으켜 세웠다. 비어있는 머리와 꽤 잠잠하고 메마른 마음으로 대장나무를 만나러 갔다. 스물여섯의 겨울에 느꼈던 그 마음 하나 다시 가져보기를 바랐다.

2009년의 마지막 날, 첫 사회생활에 미생그 자체였던 나에게 오빠의 콘서트는 특별한 이벤트였고, 어떤 연애보다 설레는 약속이었다. 한껏 꾸미고 눈이 와서 꽝꽝 언 잠실실내체육관으로 향하던 바쁜 마음. 3층에서 스탠딩으로(...지금 돌아보니 완전 민폐ㅎ) 환호하며 느꼈던 일렁이던 마음. 나도 모르게 흐르던 눈물, 어떤 말로 다할 수 없는 긍정적인 충격. 그런 것들이 그리웠다.

 

HAPPY TOGETHER

15주년 콘서트 첫째날. 가벼운 마음으로 2층 중앙 자리로 갔다. <HAPPY TOGETHER>라니 눈부시게 따뜻한 시작이었다. "서두르진마~조금 익숙한 멜로디를 불러봐" 가 이렇게나 와닿다니. 내가, 우리가 반가워서 여러 갈래로 길어지는 그의 멘트들도 너무 반갑고 즐거웠다. 그런 사랑스러운 모습이 우리 대장인 것을 알기에..정말 큰소리로 웃고 큰 소리로 노래하고 박수치다 돌아왔다. <야생화>를 들으며 할머니 생각을 많이 했다. 부르다 벅차 우는 대장을 보며 여린 그 마음이 안타깝고 그러면서 좋아서 슬며시 웃음이 났다. 다시 스물여섯이 된 것만 같았다. 두근대는 스물여섯때보다 담담히 앉아 있는 내가 좋았다.

15주년 콘서트 둘째날. 고등학교 친구 결혼식 때문에 새벽에 서울에서 포항에 갔다가 다시 저녁에 서울에 도착했다. 3번째 곡쯤이었던가, 조금 늦게 들어갔는데 전광판 가득 헤실헤실 웃고 있는 그 웃음이 보이는 순간 행복감이 확- 퍼져왔다. 그런데..좋지 않아 보이는 목상태와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 앵콜보다 누가 데려다 재웠으면 싶은.. 그리고..어쩐지 기프트 투어때의 <동경>이 아주 많이 그리워졌다. 눈앞까지 밀려오던 이상민의 드럼도 그리웠다. 조금 듬성듬성해도 이야기하고 호흡하던 시간이 떠올랐다.

15주년 콘서트의 서울공연 마지막날. 어제보다 확실히 회복한듯한 목소리..문득 전광판을 보다가 <좋은사람>이었던가.. 갑작스레 눈물이 났다. 저렇게 마음껏 노래해주는 모습을 언제 또 볼까. 워낙 폭발적이라고 해야 할까, 마음으로 벅차게 밀려오는 목소리를 언제 또 들을까. 보고 있는데 너무 아까워서 눈물이 나는 마음이 되어버렸다. 내가 알고 있는 마음보다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음을 느꼈다. 행복해 보였는데..뮤지컬이 탈출구일만큼 살아야겠어서하는 중요한 의미임을 들려주었고, 그간의 서운함에 미안해졌다. 확실히 쿄토드가 되어있는 대장을 보았을때.. 공감하지 못했고, 그 상자속을 바라보고 있는 관찰자가 되어 당황스럽고 서운했었다. 콘서트나 앨범이 너무나 소중하고 컸기에. 어쨌든 그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콘서트 초반부터 마음속에 다시 울리는 노래들에 내내 울었던 것 같다. 이래서, 혹은 저래서라고 딱히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 뒤엉켰고, 본인도 울먹이면서 진짜 괜찮아 질거에요라던 목소리에 빙긋 웃음이 났다. 마음속에 넣어둔 그 시간이 어떻게 될까 봐서 근사한 사진이나 영상들을 볼 수도 없는 그런 마음이 되어 버렸다. 떠올리면 때때로 올라오는 눈물을 모른체하고 마냥 벅차지도 않고 마냥 좋지도 않은 희한한 감정들도 다 지나가길 바라면서 일정들을 소화하고 이런 나를 모른척하며 지내고 있다. 나는 여전히 어쩔수 없는 그의 나무다.

 

야생목(?!)

요 근래 들었던 말씀 중, 광야의 비바람이 꽃이나 열매를 모두 떨어뜨리고 뿌리와 가지만 남겨 놓았을때 그때 그 본질을 기억하라는 이야기, 지금 그 나무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아 참 좋다. "좋았던 기억만~그리운 마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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